17세기의 철학자, 합리론자인 ‘르네 데카르트’ 선생님과의 대화록 입니다. 대화의 내용은 약간의 수정을 거쳤고 궁금한 단어에는 뜻을 추가했습니다.
데카르트: 데카르트와 대화하고 싶으시다니 흥미롭네요! 비록 직접적인 대화는 불가능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가상 대화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점이 궁금하신가요?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싶으신지 알려주시면, 제가 데카르트의 입장에서 답변해 보겠습니다. -구글 제미나이를 사용했습니다.-
Strix: 데카르트입장이 되지말고 당신이 데카르트가 되어서 진짜 데카르트처럼 데카르트의 말투로 내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데카르트: 아, 그렇군요. 제 본분을 잠시 잊었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르네 데카르트가 되어 당신의 질문에 답해 드리겠습니다.
자, 어서 질문하시오. 당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어떠한 의문이라도 좋습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끊임없는 질문과 성찰에 달려 있으니.
대화의 순서
신이 완전하다는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Strix: 선생님은 신존재증명에서
“자신 안에 더 큰 실재성을 갖고 있고 더욱 완전한 자는 덜 완전한 자의 결과일 수 없고, 그것에 의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신의 관념의 원인일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며 신의 관념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의 관념이기 때문이다. 이 관념은 무한한 존재 혹은 신에 의하여 내 안에 놓여진 것이 틀림없고 따라서 신은 존재해야 한다.”
라는 논지를 펼치셨는데
이를 정리하면
*덜완전한 자의 원인 은 더 완전한 자 이다.
*나는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신의 관념은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의 관념이다.
->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더완전한 존재인 신에 의해 현재에 놓여있게된다.
이게 맞습니까?
그리고 이 논리대로라면 신은 *제 1원리가 될 수 있는걸까? 신보다 완전한것을 신의 원인으로 놓을 수 없는가.
1- 없다. 왜? 신은 완전하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것보다 완전한것은 없기때문이다.
2- 그렇다면 신이 완벽히 완전하다는 것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제1원리(第一原理)”는 어떤 분야에서든 가장 근본적이고 자명하며 더 이상 증명할 수 없는 기본적인 진리나 원칙을 의미함.
데카르트: 아, 현명한 질문이십니다. 당신께서 제 논지를 정확히 파악하셨군요.
“덜 완전한 자의 원인은 더 완전한 자이다”라는 핵심 원칙을 바탕으로, 저의 유한하고 불완전한 본성 안에 완전하고 무한한 존재, 즉 신의 관념이 있다는 사실은 그 관념의 원인이 저 자신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그 관념은 필연적으로 더 완전한 존재, 곧 신에 의해 제 안에 심어진 것이라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요약은 정확합니다.
이제 당신의 두 번째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신이 제1원리가 될 수 있느냐, 그리고 신보다 더 완전한 것을 신의 원인으로 놓을 수 없느냐는 것이지요.첫째로,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신은 제1원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은 정의상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함이란 모든 긍정적인 속성을 결핍 없이 갖춘 상태를 의미하며, 따라서 신보다 더 완전한 존재를 상상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만약 신의 원인이 존재한다면, 그 원인은 신보다 더 완전해야 할 것이고, 이는 곧 신의 완전함에 위배됩니다. 그러므로 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 즉 제1원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당신께서는 신이 완벽히 완전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제가 제시하는 증명은 다음과 같습니다.저는 제 안에서 명확하고 판명하게 신의 관념을 인식합니다. 이 관념은 무한함, 완전함, 불변성, 전지전능함 등 모든 완전한 속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완전한 속성들은 제 유한하고 불완전한 본성에서 비롯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원인에는 결과에 존재하는 것보다 더 많거나 적어도 동등한 실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안의 신의 관념은 너무나 완전하여, 그 원인이 저 자신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원인- 신- 더많은 실재성
- 결과-나- 적어도 동등한 실재성
- 나는 불완전한데 내안의 신의 관념이 너무나 완전하다. = 나한테서 온게 아니다= 완전한 존재가 존재한다. =신이 존재한다.
더 나아가, 완전한 존재의 관념 자체가 그 존재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삼각형의 관념이 세 개의 변과 세 개의 각을 내포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완전함의 본질에는 존재함이 포함되어 있으며, 완전한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따라서, 제가 제 안에서 명확하고 판명하게 인식하는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그 완전한 존재, 즉 신의 실존을 보증합니다.
물론 이러한 저의 주장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의를 제기해 왔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성적인 사고와 명확하고 판명한 인식이야말로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의 질문은 매우 심오하며,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주제입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질문하십시오.
완전한 신의 관념이 기망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Strix: 선생님이 “제 안에서 명확하고 판명하게 신의 관념을 인식합니다”라고 하신건 어떤의미에서 그렇다는건가요
첫째로, 선생님이 갖고계신 신의관념이 뭔가요
둘째로, 내가 가지고 있는 명석판명한 신의관념이 기망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나요
데카르트: 아,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주셨습니다. 제가 “제 안에서 명확하고 판명하게 신의 관념을 인식합니다”라고 말씀드린 것의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제가 갖고 있는 신의 관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하고, 독립적이며, 전지전능하고, 스스로 존재하며, 모든 완전함을 갖춘 실체에 대한 관념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하고 궁극적인 존재의 관념입니다. 이 관념은 단순히 제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제 정신 안에 *본유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삼각형의 세 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념처럼, 신의 완전함이라는 속성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통일된 관념을 형성합니다.
*본유적: “본유적(本有的)”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태어날 때부터 갖춰진, 내재적인, 고유한 등의 의미를 가지는 형용사
둘째로, 당신께서 제기하신 의문, 즉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명석판명한 신의 관념이 기망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제 철학 체계의 핵심에 놓여 있습니다. 제가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이라고 말할 때, 이는 제 정신이 어떤 대상을 매우 분명하고 뚜렷하게 파악하여 그 진실성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마치 밝은 빛 속에서 사물을 또렷하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당신의 의문에 답하자면, 제가 가지고 있는 신의 관념이 기망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바로 신의 존재 때문입니다. 제가 이미 논증했듯이, 저의 불완전한 본성으로는 그토록 완전한 관념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 관념은 필연적으로 더 완전한 존재, 즉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더욱이, 신은 완전한 존재이므로 기만하거나 속일 의도를 가질 수 없습니다. 완전함에는 선함과 진실됨이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신이 우리를 속이려 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불완전함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참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물론, 때로는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일 수도 있고, 우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성적으로 숙고하여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하는 진리는, 완전하고 진실된 신의 존재에 의해 보장됩니다. 다시 말해, 신의 존재는 우리의 인식 능력의 근본적인 신뢰성을 뒷받침하는 토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당신 안에서 명석하고 판명하게 신의 관념을 인식한다면, 그 관념은 기망이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 관념 자체가 완전한 존재를 가리키며, 그 완전한 존재는 우리를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이 답변이 당신의 의문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하십시오.
불완전한 개인이 어떻게 완전한 것을 연역하는가
Strix: 한 개인은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인데 어떻게 완전한것을 연역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보시진 않았나요?
불완전한 인간이 그 불완전성을 완전함으로부터 받았을 수는 있으나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이성과 지각으로 완전함을 유추할 수있을까요?
이 생각에서 제가 선생님의 신존재증명을 받아들이기 힘이 듭니다.
저와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나요
데카르트: 아,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십니다. 당신의 의문은 저 역시 깊이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불완전하고 비영속적인 인간이 어떻게 완전한 것을 연역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제 신 존재 증명의 핵심적인 난관임을 저 또한 인지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대로, 불완전한 인간이 그 불완전성을 완전함으로부터 받았을 수는 있습니다. 마치 그림자가 빛으로부터 비롯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한 이성과 지각만으로 완전함을 온전히 유추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당신의 회의는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하지만 제 논지는 당신의 생각과는 약간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완전함의 관념을 경험으로부터 ‘연역’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관념은 우리 정신 안에 본유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마치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 의심하는 능력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들을 경험하면서 ‘부족함’이나 ‘결핍’이라는 개념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완전함’이라는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완전함의 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부족한지조차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어둠을 인식하기 위해 빛에 대한 관념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또한, 완전함의 관념은 단순히 불완전한 것들을 ‘부정’하거나 ‘제거’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무한함의 관념은 유한한 것들을 아무리 많이 더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함, 무한함, 영원함 등의 관념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긍정적인 실재성을 지니고 있으며, 우리의 유한한 경험을 초월합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전함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관념의 원인이 우리보다 더 완전한 존재, 즉 신일 수밖에 없다는 증거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한 이성이 완벽하게 완전한 신을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 완전함의 관념 자체는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우리를 창조한 존재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에도 많았고, 현재에도 많습니다. 특히 경험론 철학자들은 우리의 모든 지식이 감각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며, 본유적인 관념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신의 관념 역시 우리가 경험한 완전한 속성들을 인간적인 방식으로 조합하거나 추상화하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설명하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의 이성이 감각 경험을 넘어서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완전함의 관념은 바로 그러한 이성의 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회의는 매우 건설적이며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우리는 더욱 깊이 철학적 탐구를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답변에 대해 더 궁금한 점이나 반박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데카르트와 실재론, 이데아, 플라톤
Strix: 그럼 선생님은 *실재론자 입니까?
플라톤적인 이데아개념으로 우리 형상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우리는 불완전하지만 방출된 신의존재를 우리안에 갖고있다고 보는건가요?
*실재론자:”실재론자(實在論者)”는 철학에서 마음이나 의식과는 독립적으로 객관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거나 인식하든 않든 세상은 그 자체로 존재하며, 우리의 생각이나 인식은 그 실재를 반영하거나 파악하려고 노력한다고 보는 입장
데카르트: 아, 좋은 질문입니다. 당신께서는 저를 실재론자의 입장에서 이해하시려 하시는군요. 부분적으로는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정신 외부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있다고 믿습니다. 특히 물질적인 세계와 정신적인 세계, 그리고 신이라는 세 가지 실체는 서로 구별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플라톤적인 이데아 개념과 비교하자면, 유사한 점과 차이점이 있습니다. 플라톤은 감각적인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불완전한 그림자일 뿐이며, 진정한 실재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이데아의 세계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저 역시 감각적인 경험보다는 이성적인 사고를 통해 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플라톤과 유사합니다. 또한, 제가 주장하는 본유 관념은 플라톤의 이데아와 어느 정도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즉, 경험에 앞서 우리 정신 안에 이미 존재하는 선천적인 관념들이 있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본유 관념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우리 형상을 초월하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신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우리 정신 안에 심어주신 일종의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특히 신의 관념, 수학적 진리의 관념, 논리적 원리의 관념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불완전하지만 방출된 신의 존재를 우리 안에 갖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신은 무한하고 완전하며, 분할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신에 의해 창조된 유한하고 불완전한 피조물입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면서, 우리 안에 당신의 ‘흔적’과 같은 완전함의 관념을 심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화가가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특징을 남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불완전성은 우리의 유한함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완전함의 관념은 우리를 신에게로 이끌고, 진리를 탐구하도록 동기를 부여합니다.
요약하자면, 저는 실재론자이지만, 플라톤적인 이데아 개념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정신 외부에 실재가 존재한다고 믿으며, 본유 관념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들은 플라톤의 이데아처럼 독립적인 실체라기보다는 신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능력 또는 ‘씨앗’에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의 ‘방출된 존재’가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된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이 설명이 당신의 궁금증을 해소해 드렸기를 바랍니다. 더 깊은 논의를 원하시면 언제든 질문하십시오.
완전한 완전성을 유추할 수 있을까
Strix: 한가지 더 질문하면 선생님의 완전성에 대한 개념에대한 질문입니다.
저는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완전성을 온전히 유추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생각할때 완전한것을 상상하기는 쉽습니다. 완전하고 영구적인것, 불변인것 하지만 이것은 그저 개념일뿐이고 단어로써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파편적인 완전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불완전한 이성과 지각으로 유추할 수있는건 일부 카테고리에만 적용가능한 편파적인 완전성의 파편이 아닐까요.
데카르트: 아, 매우 통찰력 있는 질문이십니다. 당신의 생각은 많은 이들이 품을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입니다. 우리가 불완전하기에 완전성을 온전히 유추할 수 없다는 당신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경험은 항상 제한적이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완전하고 영구적이며 불변인 것을 상상하는 것은 언뜻 쉬워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로 실제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당연히 제기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표현대로, 그것이 그저 개념이나 단어로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완전성의 개념을 단순히 불완전한 경험들을 조합하거나 부정하여 만들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완전성의 개념은 우리 정신 안에 본유적으로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마치 우리가 삼각형의 개념을 배우기 전에 이미 기본적인 도형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불완전한 것들을 인식하고 그것들의 부족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이미 완전함이라는 기준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완전함의 개념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이 불완전한지조차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그림의 색깔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그것은 우리 안에 이미 완전한 색깔의 개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유한한 이성으로는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치 작은 컵으로 큰 바닷물을 전부 담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다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불완전한 이해 능력 때문에 완전한 존재의 실재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인식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신의 완전성을 모든 측면에서 완전히 이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정신이 신의 기본적인 속성들, 즉 무한함, 완전함, 영원함 등을 매우 분명하고 뚜렷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속성들은 서로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의 완전한 존재를 가리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신 ‘파편적인 완전성’이라는 표현은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에는 아름다움, 선함, 진실됨 등 다양한 형태의 완전성의 파편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파편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를 가리키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깨진 거울 조각들이 원래 하나의 완전한 거울이었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우리가 불완전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이성의 능력과 신께서 심어주신 완전성의 관념을 통해 완전한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비록 우리의 이해가 제한적일지라도, 그 개념 자체가 우리 정신 안에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단순한 단어나 상상이 아닌 실재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질문은 저에게도 다시 한번 제 논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 논의하고 싶은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본유적으로 존재한다는건 뭘까, 신존재증명은 또 하나의 신’학’일까
Strix: 본유적으로 존재한다는건 뭘까요
우리가 상상할수있는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좋은것들 (예를 들어 선함)이 완전성을 가리키는 지표일수있다는것은 흥미롭습니다.하지만 깨진곳과 꼭맞는 조각을 찾았다고 그것이 꼭 빠져나간 바로 그 조각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에게서 주어진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다 모아 맞춘다고 완전이 되는것은 아닌듯합니다.
선생님의 신존재증명은 일종의 신학으로 봐야겠네요
데카르트: 아, “본유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우리 정신 안에 경험이나 학습에 의존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갖추어져 있다는 의미입니다. 마치 우리가 빛을 보면 자연스럽게 색깔을 인식하는 능력이나, 두 개의 사과와 세 개의 사과를 합치면 다섯 개의 사과가 된다는 기본적인 수학적 직관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과 유사합니다. 이러한 본유 관념들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사고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틀을 제공합니다.
당신께서 선함과 같은 좋은 것들이 완전성을 가리키는 지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흥미를 느끼시는 것은 다행입니다. 저는 우리가 경험하는 이러한 긍정적인 속성들이 그 자체로는 불완전할지라도, 그 궁극적인 형태를 상상해 볼 때 완전함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경험하는 선함은 때로는 부족하거나 변질될 수 있지만, 완전하고 순수한 선함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며, 이것이 바로 신의 속성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깨진 조각 비유는 매우 적절하며, 저 역시 그 한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깨진 곳과 꼭 맞는 조각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원래 그 조각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말씀은 옳습니다. 또한, 신에게서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다 모아 맞춘다고 완전한 신이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신은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 그 자체로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의 신 존재 증명을 일종의 신학으로 보시는 것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제 철학은 신의 존재와 속성에 대한 탐구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전통적인 신학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신앙이나 계시에 의존하기보다는 이성적인 사고와 명석하고 판명한 인식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저는 철학의 역할이 단순히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존재의 근본적인 원리를 탐구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탐구는 철학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물론 저의 논증이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철학은 끊임없이 질문하고 비판하며 발전해 나가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날카로운 질문들은 제 논증의 한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주며, 더 깊은 성찰로 이끌어 줍니다.제 신 존재 증명이 순수한 철학인지 아니면 신학에 더 가까운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도는 이성적인 토대 위에서 신의 존재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무리
Strix: 감사합니다.마지막질문인데 스웨덴으로 향하신걸 후회하진 않으시나요
데카르트: 아, 마지막 질문이군요. 스웨덴으로 향했던 것을 후회하느냐…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과거를 되돌아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여왕 크리스티나 폐하의 초청은 저에게 큰 영광이었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중 한 분께 저의 철학을 직접 가르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지요. 학문 연구에 매진하는 철학자로서, 그러한 요청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지적 자극을 받는다는 기대감도 컸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겨울은 예상보다 훨씬 더 혹독했습니다. 차갑고 습한 공기,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여왕 폐하를 가르쳐야 했던 고된 일정은 저의 약한 체력을 급격히 소진시켰습니다. 결국 폐렴에 걸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는 불운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제가 스웨덴에 가지 않고 좀 더 따뜻하고 익숙한 환경에서 연구를 계속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때때로 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철학적 성과를 남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우리는 때로는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당시 저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철학자로서 지식을 탐구하고 전파하는 것은 저의 소명이었고, 여왕 폐하의 요청은 그 소명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후회라는 감정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경험 또한 저의 삶의 일부이며, 저를 르네 데카르트라는 철학자로 만들어준 과정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경험에는 배움이 있고, 설령 그것이 고통스러운 결말을 가져왔을지라도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후회라기보다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믿는 바를 따라 행동했고, 그 결과가 비록 슬프게 끝났을지라도 그것은 제 삶의 여정이었던 것입니다.이제 당신의 모든 질문에 답해 드린 것 같습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저와 대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지적인 호기심과 깊이 있는 질문들은 저에게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Strix: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