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든 옥수수든 일단 대학물을 먹어야….
이 말로 이 글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물론 필자는 고졸이지만 먹는 것 만큼은 식음료 전문가가 먹고 탈날 만큼은 먹기에 자신 있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고 많은 작물 중에 수수가 커져서 옥같이 영글어 옥수수일까. 내 마음의 자유를 위해 따로 검색을 하지 않고 그렇게 믿기로 하겠다. 여름의 옥수수는 실로 옥 같다. 반짝이는 표면 안에 꽉 들어찬 전분이 익어서 그런걸까. 반투명하고 반들거리고 아주 탄력적인 아이보리 색이 말 그대로 알알이 박힌 옥의 행렬이다.
갓 삶은 대학 찰 옥수수를 양손으로 잡고 그 열기를 참아가며 반으로 탁 가르면 절단면에 붙은 옥 같은 알들이 탄력에 의해 일어서는데 그 부분을 한 알 앞니로 튿어내어 깨물면 딱하고 터지는 입안의 그 첫 한 알이 참 각별하다. 티몬과 품바가 이런 묘미로 딱정벌레를 먹는걸까.
“충청북도에 와서 아침에 딴 대학 찰 옥수수를 바로 쪄내어 바로 먹었다.”
키워드는 충청북도에 와서, 딴, 대학 찰 옥수수, 바로 쪄서, 바로 먹었다. 이다
어느 한 과정도 빠져서는 안된다.
서울에서 어제 딴 대졸 짱 옥수수를 내일 쪄서 먹어야지 같은 마음가짐과 행동은 정말 필자를 짜증나게 한다. 그런식으로 옥수수를 접근하지 말아줬으면
처음 충청북도에 와서 아침에 딴 대학 찰 옥수수를 바로 쪄내어 바로 먹었을 때
나는 순간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으로는 옥수수 알갱이를 터트리며 머릿속으로는 나의 현재 나이와 나의 기대수명을 재빠르게 계산했다. 대략적으로 내가 40년을 살았고, 앞으로 노력해서 40년을 더 산다고 할 때, 내가 앞으로 40번의 여름을 더 보낼 것이고 내가 이 대학 찰 옥수수를 먹을 기회는 40번 정도가 남았구나 하고 말이다.
고작 마흔 번 밖에 먹지 못하다니 나의 수명과 제철음식의 공포여. 돌아가신 조상님들이 제삿밥에 그렇게 집착하고, 후손들에게 으르딱딱 거리며, 또 후손들은 조상신의 진노를 피하기위해 그렇게 제삿상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알았다. 이게 다 맛 좋은 제철 대학 찰 옥수수와 나의 기대수명 그리고 이 맛난 것을 나는 죽어서 못 먹는데 내 자식 손주놈들은 핏자 햄버거만 축내고 있으니 화가 머리 끝까지 나지 않을 방법을 혼령의 상태에서는 해꼬지로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옥수수에 관해서는 귄위자들 특유의 뻔뻔하고 극단적이며 예민한 취향을 가지고있다.
나는 어릴적부터 옥수수를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옥수수에 대해서는 엘리트코스를 밟으며 자랐다. 영농 후계자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옥수수를 계속 먹으며 항상 손이 잡히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말이다.그래서 옥수수에 관해서는 귄위자들 특유의 뻔뻔하고 극단적이며 예민한 취향을 가지고있다.
간혹 옥수수는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느니 갓 솥에서 꺼낸 뜨거운 것만 먹는다느니 하는 옥수수 마니아들이 있는 걸로 알고있다. 하지만 이건 옥수수를 덜 먹은 자들이나 하는 소리이다. 갓 쪄낸 옥수수의 맛이 각별한 것은-그 중에서도 첫 한 알이-사실이나 뜨거운 옥수수를 한 두자루 먹다보면 나머지는 따뜻한 정도로 식어가고 세 네자루 먹다 보면 이윽고 실온이 된다. 옥수수는 온도의 변화를 즐겨가며 차갑게 식을 때 까지 끈질기고 관성적으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근면한 방식으로 먹지 않는다면 혹시 나는 옥수수를 한두자루만 솥에 넣고 찌는 사람은 아닌지 반성 해보길 바란다.
찰옥수수를 찔 때는 옥수수가 겨우 잠길 정도의 물에 조금 짠기가 돌정도로만 소금을 넣어 찌는걸 선호한다. 센불에 20분 약한불에 20분정도면 넣었던 물이 절반정도로 줄어들며, 삶기의 후반부에는 좋은 향기가 난다.수확한지 하루가 지나기전에 옥수수를 찌게 되면 감미료를 넣지 않아도 소금기가 본래의 단맛과 상승작용을 일으켜 풍부한 맛을 낸다. 필자는 감미료에 의지하는 옥수수 찌기를 하지는 않지만 소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강박이 있거나 안타깝게도 비충청권에 거주하여 좋은 옥수수를 구할 수 없는 경우 그리고 수확한지가 언제 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무언가 수수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길 위의 선량한 구도자인 고속도로 옥수수 판매상분들의 노하우를 전달하자면
“뉴슈가는 오뚜기”
이렇듯 대학 찰 옥수수는 본격적인 여름이 왔다는 신호이며 (시즌은 7월초부터다.) 내가 옥수수를 먹고 있다는 것은 올해도 이 시간을 잘 살고 있다는 실감이다.
그렇지만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물론 첫 옥수수가 제일 맛이 있지만 나는 옥수수를 쪄서 냉동을 해 놓고 일년내내 먹기 때문이다. 그날 딴 옥수수는 그날 모두 쪄서 즐길 만큼 먹고 남은 분량은 소분하여 냉동한다. 냉동해두었던 것을 다시 삶을때는 찜기에 찌는 것도 좋지만 물에 담가서 다시 한번 팔팔 끓이는 것이 더 찰기있고 촉촉하게 먹는 방법이다.
어느 겨울날 냉동고 저 안쪽에서 마지막 남은 지난 여름의 옥수수를 꺼내어 다시 펄펄 끓이면 그 향안에서는 그때의 여름이 살아난다. 아시다시피 지나간 계절을 어거지로 붙잡아 놓는 추잡스러운 짓거리를 열심히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쯤되면 필자는 그냥 옥수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속단하고 이 글을 읽고 있을 것 이다. 물론 큰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제철에 생산되는 지역의 특산물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경험하고 느껴보자. 입추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