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한 아주 딱딱한 복숭아

혹시 물렁한 복숭아를 먹는 안타까운 사람이 당신 주변에도 있다면..

여름은 복숭아의 계절이다. 우아한 핵과류인 복숭아. 그 중에서도 백도, 그 중에서도 딱딱한 백도는 여름과일의 여왕이자 공주이다 물론 왕이자 왕자이기도 하다. 짙은 분홍빛부터 천천히 밝아져 급기야 하얗게 빛나는 그 한 알은 보고 있으면 향기가 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 쯤 정말로 그 달콤한 향기가 난다.

천도의 아름다운 붉은빛과 산미는 물론, 황도의 강렬한 노란빛도 좋지만 복숭아라는 과일의 미덕은 딱딱함이다. 단단한 과육과 꽉차있지만 흐드러지지않은 정갈함을 보여주는 백도의 단정함은 식욕을 돋우기도, 수집욕을 돋우기도 한다.

복숭아는 왜 그렇게 매혹적인 걸까. 가장 매혹적인 인간의 신체부위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이성의 탄탄한 엉덩이를 좋아하듯이 그것을 닮은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한다.

애처롭게도 물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축처지고 물렁한 엉덩이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취향이 아닐까.

딱딱한 복숭아가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먹는 방식에 있다. 나는 차가운 복숭아를 물에 잘 씻은 뒤 꼭지가 위로가게 놓았을 때 지면과 수평으로 복숭아를 한바퀴 빙 돌려가며 자른다. 그런 다음 복숭아에 패인 골의 90도 옆쪽으로 한바퀴 빙 돌려 또 잘라준다. 자를 때는 복숭아의 딱딱한 씨가 있는 곳까지 칼을 넣어 잘 잘라주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복숭아 위아래를 양손으로 잡고 잼뚜껑을 따듯이 돌려주면 쫙 하는 소리와 함께 복숭아는 이등분되고 다시 각 각의 조각을 90도 돌려주면 칼집을 따라 분리되어 쉽고 우아하게 복숭아를 손질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간결하고 아름다운 손질법은 물러 터진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감히 모방하기 힘든 기교이다.

한가지 이 손질법의 팁을 드리자면 패인 골부분을 자르게되면 씨가 조각나는 방향과 같기때문에 씨도 반으로 갈라지게된다.

딱딱한 복숭아는 씹을때 조차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딱딱한 복숭아는 씹을때 조차 강렬한 쾌감을 선사한다. 껍질을 벗겼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같다.

나는 보통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는 것을 선호하는데 복숭아껍질 특유의 벨벳 같은 부드러움과 그 안의 단단한 과육의 느낌이 기분 좋은 저항감과 쾌감을 준다. 아삭하고 뽀득하게 이가 박혀 들어가는 분명한 느낌과 잘 같혀있는 과즙덕에 향이 먼저 오고 씹어야 비로소 맛이 따라 나오며 고조되는 일체감이 딱딱한 복숭아를 먹는 그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만약 당신이 혹여나 물렁한 복숭아 (물복)를 만나게 되어 먹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껍질을 까서 먹는 상황이라면 이미 껍질을 까는 도중에 복숭아의 체액이 줄줄 새고 과육은 손의 압력에 의해 짓눌려 여기저기 움푹 패어 있을 것이다. 축축한 복숭아를 포크로 찌르기도 손으로 잡기도 애매하여 포크로 찔러놓고 손바닥에 얹어 입으로 흘려 넣는 애처로운 상황에서 과육은 입가로 주르르 흐르고 주위에는 초파리만이 앵앵거릴 것이다.

한편 껍질을 까지 않고 잘 씻어서 물복을 먹는 상황이라도 비참함은 마찬가지이다. 물복숭아를 조각내거나 이로 씹을 때 칼이나 이가 박혀 들어갈때 탄력없는 포유동물의 가죽처럼 물복숭아의 껍질은 질깃질깃하게 칼이나 이를 따라 과육안으로 말려 들어갈 것이고 흐물흐물한 과육이 목구멍을 지나치고 입안에는 복숭아껍질만이 아무 맛도 남기지 않은 체 남아있을 것이다.

부디 어색하게 눈치를 보며 그 껍질을 뱉지 말라. 당신이 선택한 길이다.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있다. 치아와 얼굴에서 엷은 광택과 몸에서는 은은한 복숭아 향기가 난다.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언제나 단정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있다. 치아와 얼굴에서 엷은 광택과 몸에서는 은은한 복숭아 향기가 난다.

물렁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길 모퉁이에 몸을 반만 내놓고 서서 과즙이 묻은 손을 티셔츠 아랫단에 문질러 닦고 있다. 얼굴에는 끈끈한 과즙이 묻어 얼룩져 있고 초파리도 두어마리 따라다닌다.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타심이 있다. 딱딱한 복숭아를 냉장고에 잔뜩 쟁여 놓고 혹여 시간이 너무 오래지나 물렁해지면 핸드폰을 열어 차단목록에 등록해놓은 물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복숭아를 나누어 준다.

그렇지만 물렁한 복숭아는 조금만 먹을 때가 지나도 식초가 되거나 술이 되거나 어찌되든 복숭아가 아닌 것이 되고 만다.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은 명랑하고 마음이 넓다. 소소한 일상에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삶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며 희망찬 내일을 설계한다. 모든면에서 물렁한 복숭아를 좋아하는 사람과는 반대성향을 가지고 있다. 혹시당신이

이 글을 읽고 발끈한다면 혹시 오늘 나는 물렁한 복숭아를 먹지 않았나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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